협상 없이 줄인 비용: 구매 경로 전환 사례 읽기

3줄 요약

  • 비용 절감이라고 하면 공급사와 단가를 다시 협상하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구매 경로만 바꿔도 줄어드는 비용이 있습니다.
  • 한 전문서비스 기업(A사)의 1년 구매를 품목 단위로 분석한 외부 진단에서는 지정 공급사 전환과 표준 단가 적용만으로 품목별 절감 여지가 확인됐습니다.
  • 절감률보다 금액으로 읽는 법, 그동안 줄지 않았던 이유, 구매 시점에 선택지가 보이게 만드는 순서를 정리했습니다.
김지현8분 읽기
빨간 서류 폴더와 리본, 흰 계약 서류를 집은 검은 클립

비용 절감 회의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대개 비슷합니다. "주요 공급사 불러서 단가 다시 받아 봅시다." 협상은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협상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비교 견적을 받고, 물량을 모으고, 기존 공급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협상 대상은 금액이 큰 몇 개 품목에 머무르고, 나머지 수십 개 품목은 그대로 남습니다.

이 글은 그 "나머지"에서 일어난 일을 다룹니다. 한 전문서비스 기업(이하 A사)의 1년치 구매를 품목 단위로 분석한 외부 진단 사례입니다. 이 진단에서 눈에 띈 것은 협상이나 입찰 없이 구매 경로를 바꾸는 것만으로 절감 여지가 확인된 품목들이었습니다. 숫자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이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절감은 단가 협상이라는 고정관념

절감을 협상과 같은 말로 생각하면 두 가지 착시가 생깁니다.

첫째, 이미 좋은 조건이 있는데도 쓰지 않는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회사에 계약 단가가 있는 공급사가 있어도, 현업이 그 사실을 모르면 가까운 쇼핑몰에서 법인카드로 삽니다. 이때 비용이 높은 이유는 협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매 경로가 어긋나서입니다.

둘째, 작은 품목은 협상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명함이나 정수기 렌탈을 위해 공급사 미팅을 잡는 구매팀은 드뭅니다. 그런데 이런 품목이 수십 개 모이면 금액이 달라집니다. 테일 스펜드(소액 분산 지출)라고 부르는 영역입니다.

A사 진단의 출발점도 이 영역이었습니다. 진단은 1년치 지급 데이터(AP) 약 880억 원에서 시작해 급여·임대료·세금·내부 거래처럼 구매로 통제할 수 없는 항목을 걷어냈습니다. 남은 통제 가능 지출은 약 616억 원, 전체의 약 70%였습니다. 이 중 정보통신, 차량관리, 전문용역 세 카테고리에 약 56%가 몰려 있었습니다. 큰 덩어리는 협상과 계약 재검토의 대상이고, 나머지 작은 덩어리는 통합의 대상입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후자입니다.

작은 덩어리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협상은 한 번 끝나면 다음 협상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경로 전환은 바꾼 날부터 매달 효과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구매가 정해진 경로로 모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품목별 단가와 수량 데이터가 쌓입니다. 이 데이터가 다음 협상의 근거가 됩니다. 경로 전환은 그 자체로 절감이면서 다음 절감을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합니다.

실측: 지정 공급사 전환과 표준 단가 적용

진단에서 확인한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정 공급사 전환입니다. 이미 검증된 단가와 조건을 가진 공급사로 구매처를 옮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표준 단가 적용입니다. 자주 사는 품목의 기준 단가를 정해 두고, 그 단가로 사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 다 새로운 입찰이나 협상 프로젝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품목별 결과: 다섯 품목을 금액으로 읽기

A사 진단에서 경로 전환만으로 절감 여지가 확인된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분석 기간은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입니다.

품목

연간 지출

절감률

방법

절감액(단순 계산)

명함

약 9,300만 원

20%

표준 템플릿 서비스로 전환

약 1,860만 원

공기청정기(구매·렌탈)

약 1.1억 원

15%

검증 단가 브랜드로 전환

약 1,650만 원

정수기(구매·렌탈)

약 3,400만 원

9%

검증 단가 브랜드로 전환

약 310만 원

사무용품

약 2.7억 원

6%

75개 품목 표준 단가 적용

약 1,600만 원

꽃·화환

약 7.4억 원

5%

통합 서비스로 전환

약 3,700만 원

표를 절감률 순서로 읽으면 명함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런데 금액 순서로 읽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절감률이 가장 낮은 꽃·화환이 금액으로는 가장 큽니다. 연간 지출 자체가 다른 품목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사무용품도 6%라는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금액으로는 공기청정기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A사 품목별 연간 지출 막대와 절감률·절감액. 꽃·화환 약 7.4억 원 5% 약 3,700만 원, 사무용품 약 2.7억 원 6% 약 1,600만 원, 공기청정기 약 1.1억 원 15% 약 1,650만 원, 명함 약 9,300만 원 20% 약 1,860만 원, 정수기 약 3,400만 원 9% 약 310만 원

그림 1. 품목별 연간 지출과 경로 전환 후 절감률(A사, 2024년)

다섯 품목의 연간 지출을 합하면 약 12.5억 원이고, 단순 계산한 절감액 합계는 9천만 원대입니다. 품목 하나하나는 경영진 보고 안건이 되기 어려운 크기지만, 다섯 개를 모으면 별도 과제로 관리할 만한 금액이 됩니다. 실제 진단에서는 이런 품목이 더 있었으므로, 같은 방식으로 품목을 늘려 가면 합계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왜 그동안 줄지 않았나: 시스템 밖 구매

이 품목들이 그동안 줄지 않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구매가 시스템 밖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 부서마다 필요할 때 알아서 업체를 찾고, 법인카드나 개인 경비로 결제합니다.

  • 정산은 영수증으로 사후에 합니다. 이 시점에는 이미 돈이 나간 뒤입니다.

  • 명세서에는 가맹점과 총액만 남습니다. 어떤 사양을 몇 개 어떤 단가에 샀는지는 남지 않습니다.

  • 그래서 "더 나은 단가가 이미 있다"는 사실이 구매하는 순간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문제는 단가가 아니라 정보의 위치입니다. 좋은 조건은 구매팀의 엑셀에 있고, 구매 결정은 현업의 검색창에서 일어납니다. 둘이 만나지 않으니 절감 여지가 매년 그대로 남습니다.

큰 덩어리는 다른 방법으로 다룹니다

경로 전환이 모든 지출에 맞는 방법은 아닙니다. A사 진단에서 통제 가능 지출의 약 56%가 몰린 상위 세 카테고리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카테고리

연간 지출

진단에서 지적된 문제

맞는 방법

정보통신(시스템·통신)

약 145억 원

개별 계약 분산, 갱신 관리 부재

계약 목록화와 갱신 전 재검토

차량관리(법인차·렌탈)

약 109억 원

계약 구조·공급사에 따라 편차가 큼

계약 조건 비교와 공급사 정리

전문용역(법무·컨설팅)

약 96억 원

건별 발주, 단가표 부재

단가 기준 마련과 비교 견적

이 카테고리들은 계약이 길고 공급사와의 관계가 깊어서, 구매 창구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계약 목록을 만들고, 갱신 시점에 맞춰 조건을 다시 보는 별도의 과제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경로 전환의 대상은 계약 없이 건별로 반복되는 소액 품목입니다. 두 영역을 섞으면 큰 과제는 준비가 길어 늦어지고, 작은 과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큰 덩어리는 협상과 계약 재검토로, 작은 덩어리는 경로 전환과 통합으로 나눠 동시에 진행하는 편이 낫습니다.

경로 전환이 실패하는 세 가지 경우

  • 기준 공급사가 현업의 필요를 못 맞출 때: 배송이 느리거나 품목이 부족하면 현업은 다시 예전 경로로 돌아갑니다. 기준 공급사를 정할 때 단가만이 아니라 납기와 품목 범위를 함께 봐야 합니다.

  • 요청 절차가 이전보다 번거로울 때: 법인카드로 바로 사던 것을 결재 세 단계를 거치게 하면 우회 구매가 늘어납니다. 소액 반복 품목은 결재를 가볍게 두는 편이 전환율이 높습니다.

  • 성과를 확인하지 않을 때: 전환 후 청구서 단가를 대조하지 않으면, 기준 단가가 슬그머니 올라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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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시점에 보이게 만들기

해법은 결제 뒤의 검토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순간에 더 나은 선택지가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사는 물건은 그대로 두고, 누가 어디서 어떤 단가를 보고 사는지를 바꿉니다.

구매 경로 전환 전후 흐름. 전환 전은 필요 부서가 각자 업체 검색, 법인카드·개인경비 결제, 영수증 사후 정산, 가맹점·총액만 남는 데이터. 전환 후는 한 창구로 구매 요청, 지정 공급사·표준가 노출, 규정대로 결재, 품목·단가 단위 데이터. 품목·부서·수량은 그대로이고 구매 시점의 경로만 바뀜

그림 2. 구매 경로 전환 전후: 바뀌는 것과 그대로인 것

순서는 다음과 같이 잡으면 무리가 없습니다.

  1. 반복 품목 목록 만들기: 지난 12개월 법인카드·개인 경비 내역에서 3회 이상 반복된 품목을 뽑습니다. 명함, 화환, 사무용품, 생수, 렌탈처럼 사양이 단순하고 반복되는 품목이 먼저 걸립니다.

  2. 품목별 기준 공급사 정하기: 품목마다 기준 공급사 한 곳과 기준 단가를 정합니다. 이미 계약이 있다면 그것을, 없다면 견적 두세 곳을 받아 정합니다.

  3. 요청 창구 하나로 모으기: 그 품목은 정해진 창구로 요청하도록 공지합니다. 처음부터 막기보다 기준 공급사가 아닌 곳에서 샀을 때 사유를 적게 하는 정도로 시작합니다.

  4. 분기마다 대조하기: 기준 공급사 경유 비율과 품목별 평균 단가를 분기마다 비교합니다.

작은 절감률을 금액으로 보고하는 법

경로 전환의 성과는 절감률로 보고하면 작아 보입니다. 5%, 6%는 경영진의 관심을 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고는 세 줄로 정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보고 항목

쓰는 방법

예시(가상의 숫자)

대상 지출

경로 전환 대상 품목의 연간 지출 합계

10억 원

절감 금액

품목별 지출 × 절감률의 합

7천만 원

확인 방법

전환 후 청구서 단가와 기준 단가 대조

분기별 대조표

A사 사례를 우리 회사에 옮길 때 확인할 것

다른 회사의 사례를 그대로 목표로 삼으면 곤란합니다. 옮기기 전에 세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첫째, 품목 구성입니다. A사는 화환 지출이 컸는데, 이는 대외 경조가 많은 업종 특성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반복 품목은 다를 수 있습니다. 둘째, 기존 구매 방식입니다. 이미 사무용품을 한 공급사로 모아 사고 있다면 같은 방법으로 얻을 여지는 작습니다. 셋째, 측정 기준입니다. A사 수치는 1년치 실제 지급 데이터를 품목 단위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우리 회사도 품목 단위 데이터가 없으면 같은 숫자를 낼 수 없습니다. 결국 사례에서 가져올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반복 품목을 금액 순으로 세우고, 경로를 바꾸고, 청구서로 확인한다"는 방법입니다.

확인 방법 칸이 중요합니다. 기준 단가를 정했다는 것만으로는 절감이 아닙니다. 전환 이후 실제 청구서에서 단가가 내려갔는지 대조한 금액만 성과로 보고해야 재무팀이 인정합니다. 기준 공급사를 정해 두었는데 현업이 계속 다른 곳에서 산다면 절감은 장부에만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바로 해 볼 일

  1. 지난 12개월 법인카드 내역에서 가맹점 기준 반복 구매 품목 상위 10개를 뽑습니다.

  2. 품목마다 연간 지출 합계를 적고, 회사에 이미 계약 단가가 있는 품목인지 표시합니다.

  3. 계약 단가가 있는데 다른 곳에서 사고 있는 품목 하나를 골라 이번 달부터 요청 창구를 지정합니다.

  4. 보고 양식을 절감률이 아니라 "대상 지출·절감 금액·확인 방법" 세 줄로 바꿉니다.

자주 묻는 질문

경로 전환은 기존 공급사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습니까?

대상은 주로 계약 없이 건별로 거래하던 소액 품목입니다. 계약이 있는 핵심 공급사는 경로 전환보다 계약 재검토의 대상입니다. 두 과제를 나눠서 진행하면 관계 부담이 줄어듭니다.

절감률이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하게 나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의 수치는 한 기업의 1년치 데이터에서 나온 결과이며, 품목 구성과 기존 구매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숫자보다 "반복 품목을 뽑고, 기준 공급사를 정하고, 청구서로 대조한다"는 순서를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품목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까?

사양이 단순하고, 반복 구매가 잦고, 부서마다 따로 사는 품목이 좋습니다. 명함, 화환, 사무용품, 생수, 정수기 렌탈처럼 현업이 경로를 바꿔도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는 품목에서 먼저 성과를 확인한 뒤 범위를 넓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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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김지현 구매노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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